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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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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버트 볼트는 영국의 극작가이자 영화 각본가이다.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교사로 일하며 라디오 드라마와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1957년 희곡 《꽃피는 체리》의 성공 이후 극작에 전념했으며, 《사계절의 사나이》,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등 여러 작품으로 아카데미상과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갈등과 사회적 압력을 다루며, 1979년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된 후에도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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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볼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로버트 옥스턴 볼트
원어 이름Robert Oxton Bolt, CBE
출생일1924년 8월 15일
출생지잉글랜드, 체셔, 세일
사망일1995년 2월 20일 (향년 70세)
사망지잉글랜드, 서식스, 치체스터
학력맨체스터 문법 학교; 맨체스터 대학교; 엑서터 대학교
경력
직업각본가, 극작가
활동 기간활동 기간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작품 활동
주요 작품영화 각본
아라비아의 로렌스 (1962)
닥터 지바고 (1965)
모든 계절의 사나이 (1966)
라이언의 딸 (1970)
미션 (1986)
희곡
모든 계절의 사나이 (1960)
비바트! 비바트 레지나! (1971)
수상아카데미 각색상
1965년 닥터 지바고
1966년 모든 계절의 사나이
뉴욕 영화 비평가 협회상 각본상
1966년 모든 계절의 사나이
영국 아카데미상 각본상
1962년 아라비아의 로렌스
1966년 모든 계절의 사나이
토니상 극본상
1962년 모든 계절의 사나이
골든 글로브상 각본상
1965년 닥터 지바고
1966년 모든 계절의 사나이
1986년 미션
사생활
배우자셀리아 앤 "조" 로버츠(1948년–1963년, 이혼)
세라 마일즈(1967년–1976년, 이혼; 1988년–1995년)
앤 퀸즈베리 (1980년–1985년, 이혼)
자녀4명
기타
훈장대영 제국 훈장 3등급 (CBE)
공식 웹사이트공식 웹사이트 정보가 없습니다.

2. 생애

로버트 볼트는 맨체스터에서 태어나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했다.[1][20] 대학 졸업 후 교사로 재직하며 라디오 드라마희곡을 쓰기 시작했다.[3][22] 1957년 희곡 《피어나는 벚꽃》(Flowering Cherryeng)이 런던에서 성공을 거두면서[3][20][23] 1958년 교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3]

그는 토머스 모어의 삶을 다룬 대표작 《사계절의 사나이》(1960)를 비롯하여 《호랑이와 말》(1960), 《신사 잭》(1963), 아동극 《볼리그루 남작의 방해》(1965), 《오누이》(1967) 등 여러 희곡을 발표했다. 《사계절의 사나이》는 연극과 영화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볼트는 영화 각본 작업에 집중하여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닥터 지바고》, 《라이안의 처녀》 등 유명 영화 각본을 썼다. 그의 작품들은 주로 사회와 갈등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렸으며, 특히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는 T. E. 로렌스를 영국 사회와 아랍 사회 모두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로 묘사하며 실존적인 주제를 탐구했다.

1960년대 초, 볼트는 100인 위원회의 일원으로 핵 확산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잠시 투옥되기도 했다.[4] 이는 그의 사회 참여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이다. 전쟁 후 영국 공산당에 가입했으나, 1960년대 말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이후 탈당했다.[7]

1979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쪽 반신 마비와 언어 장애를 겪었으나, 재활에 힘쓰며 왼손으로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하여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20] 뇌졸중 이후 《바운티》(1984), 《미션》(1986), TV 영화 《경고 없이: 제임스 브래디 스토리》(1991) 등의 각본을 완성했다.

개인적으로는 네 번 결혼했으며, 이 중 두 번은 배우 세라 마일스와 했다.[6] 첫 부인 실리아 앤 로버츠와의 사이에 세 자녀를, 세라 마일스와의 사이에서 한 명의 자녀를 두었다.[5] 1995년 햄프셔에서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8][20]

2. 1. 초기 생애

그레이터 맨체스터 세일에서 감리교 신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작은 가구점을 운영했다.[1][21] 맨체스터 그래머 스쿨에서 공부하며 토머스 모어 경에 대한 관심을 처음으로 키웠다.[1][20] 16세에 학교를 졸업한 후 보험 회사에서 잠시 일했지만, 이를 좋아하지 않았다.[1] 야간 수업을 통해 대학 입학 자격을 얻어 맨체스터 대학교에 입학하여 사학을 전공했다.[1][20]

대학 재학 중인 1943년부터 1946년까지 RAF에서 조종사 후보생으로 복무했으나, 항공 멀미 때문에 훈련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2] 이후 1947년까지 서아프리카에서 육군 장교로 복무한 뒤[2], 맨체스터 대학교로 돌아와 3년간의 학업 끝에 역사학 명예 학위를 받았다.[2][20] 그 후 엑서터 대학교에서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3][20]

1952년부터 1958년까지 여러 해 동안 밀필드 스쿨에서 영어와 역사를 가르쳤으며, 뛰어난 수업으로 명성을 얻었다.[3][20] 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라디오 드라마를 집필하기 시작했고, 연극 에이전트 페기 램지의 권유로 희곡도 쓰기 시작했다.[22]

1957년, 그의 희곡 《피어나는 벚꽃》(Flowering Cherry영어)이 셀리아 존슨과 랄프 리처드슨 주연으로 런던에서 성공적으로 상연되면서 영국 전체의 주목을 받았다.[3][20][23] 이 성공에 힘입어 1958년, 33세의 나이로 교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3]

2. 2.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1943년부터 1946년까지 영국 공군에서 군 복무를 했다.[20]

2. 3. 교사 생활과 극작 활동

그레이터 맨체스터의 세일에서 감리교 신자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작은 가구점을 운영했다.[1][21] 맨체스터 그래머 스쿨에서 공부하며 토머스 모어 경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1] 16세에 학교를 졸업한 후 잠시 보험 회사에서 일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야간 수업을 통해 A-레벨을 통과하여 맨체스터 대학교에 입학했다.[1] 대학 재학 중이던 1943년부터 1946년까지 RAF에서 조종사 후보생으로 복무했으나, 항공 멀미로 인해 실제 비행 훈련 이상은 진행하지 못했다.[2] 이후 1947년까지 서아프리카에서 육군 장교로 복무했으며, 제대 후 맨체스터 대학교로 돌아와 역사학 명예 학위를 받았다.[2][20] 그 후 엑서터 대학교에서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3][20]

볼트는 여러 해 동안 Millfield Schooleng에서 영어와 역사를 가르쳤으며, 뛰어난 수업으로 명성을 얻었다.[2][20] 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라디오 드라마를 집필하기 시작했으며, 연극 에이전트 Peggy Ramsayeng의 권유로 희곡 창작에도 손을 댔다.[22]

1957년, 그의 희곡 《꽃피는 체리》(Flowering Cherryeng)가 셀리아 존슨과 랄프 리처드슨 주연으로 런던에서 상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2][20][23] 이 작품은 회사원의 좌절과 전원생활에 대한 거짓된 환상을 주제로 하여, 영국판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다만 환상과 현실의 도치나 주인공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어 상업극 관객의 취향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특징도 지녔다. 이 성공에 힘입어 볼트는 1958년, 33세의 나이에 교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2]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대표작 《사계절의 사나이》(1960)를 비롯하여 《호랑이와 말》(1960), 《신사 잭》(1963), 아동극 《볼리그루 남작의 방해》(1965), 《오누이》(1967) 등 다수의 희곡을 발표했다. 《사계절의 사나이》는 토머스 모어를 주인공으로, 캐서린 오브 아라곤과의 이혼 문제로 헨리 8세와 충돌하는 그의 모습을 브레히트적인 수법을 사용하여 역사적 인물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 감동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큰 주목을 받았다. 반면, 사실주의표현주의 사이의 실험적 시도를 보인 《호랑이와 말》과 《신사 잭》은 상대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으나, 아동극인 《볼리그루 남작의 방해》에서는 그의 재능이 다시 한번 발휘되었다.

이후 볼트는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라이안의 처녀》 등 주로 영화 각본 작업에 집중하게 된다.

2. 4. 1960년대: 전성기

1957년 희곡 《꽃피는 체리》의 성공 이후 전업 작가가 된 로버트 볼트는 1960년대에 극작가 및 시나리오 작가로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 시기 그의 대표작으로는 희곡 《사계절의 사나이》(1960)가 있다. 이 작품은 토머스 모어를 주인공으로 하여, 캐서린 오브 아라곤과의 이혼 문제로 헨리 8세와 충돌하는 과정을 그린다. 볼트는 브레히트적인 기법을 사용하여 역사적 인물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며 감동을 주었고, 이 희곡은 연극 무대와 영화 버전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같은 해 발표된 《호랑이와 말》(1960)과 이후 《신사 잭》(1963)은 사실주의표현주의 사이의 실험적인 시도였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동극인 《볼리그루 남작의 방해》(1965)에서는 그의 재능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이 외에도 《오누이》(1967) 등의 희곡을 발표했다.

1960년대 볼트는 영화 각본가로서도 큰 명성을 얻었다. 그는 데이비드 린 감독과 협력하여 T. E. 로렌스의 자서전 ''지혜의 일곱 기둥''을 각색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의 각본을 썼다. 여러 작가가 실패했던 작업을 성공시키며, 로렌스를 영국 사회와 아랍 사회 모두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냈다. 이 작품은 볼트 특유의 실존적인 접근 방식을 보여주며 큰 호평을 받았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작업 중 볼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기도 했다. 그는 100인 위원회의 일원으로 핵 확산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석방을 위한 서명을 거부하여 1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4] 그러나 영화 제작자 샘 스피겔의 설득으로 2주 만에 석방되었는데, 볼트는 이후 자신의 타협을 후회하며 스피겔과 관계를 끊었다.

이후 볼트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영화 《닥터 지바고》의 각본을 맡아 또다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원작 소설에 인간적이고 간결하며 의미심장한 대사를 특징으로 하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불어넣었다. 이 시기 그는 《라이안의 처녀》의 각본 작업에도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2. 5. 1970년대 이후: 뇌졸중과 후기 작품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영화 및 연극 각본을 잇달아 집필하여 여러 작품으로 저명한 상을 받았다.[20][23]

1979년 뇌졸중 발작으로 오른쪽 반신 불수가 되었고, 언어 능력 일부를 상실했다.[20] 이후 재활에 힘쓰면서 왼손으로 전동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하여 집필을 계속했다.[20] 뇌졸중 이후 처음 참여한 프로젝트는 영화 ''바운티''(1984)였다. 이 작품에서 플레처 크리스찬은 사회와 갈등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미션''(1986)은 볼트의 마지막 영화 프로젝트였으며, 18세기 예수회의 남아메리카 활동을 다루며 그의 일관된 주제 의식을 보여주었다.

볼트가 마지막으로 제작한 각본은 '정치적 동물'이었으며, 이는 TV 영화 ''경고 없이: 제임스 브래디 스토리''(1991)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로널드 레이건 암살 시도 사건과 당시 총상을 입고 회복 과정을 거친 비서 제임스 브래디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볼트는 처음에 제작을 망설였으나, 브래디를 만난 후 그의 머리 부상으로 인한 고통에 공감했고, 자신의 뇌졸중 회복 경험을 각본에 반영했다.

배우 사라 마일스와는 두 번 결혼했으며(1967년-1975년, 1988년-1995년), 두 번째 결혼은 그의 말년에 이루어졌다. 1995년 햄프셔에서 사망했다.[20]

2. 6. 결혼과 개인사

로버트 볼트는 총 네 번 결혼했으며, 이 중 두 번은 영국 배우 세라 마일스와 했다.[6] 그의 첫 번째 아내는 실리아 앤 "조" 로버츠로, 두 사람 사이에는 샐리(1982년 사망), 벤, 조안나 세 자녀를 두었다.[5] 이들은 1963년에 이혼했다. 볼트는 1967년부터 1976년까지 세라 마일스와 처음 결혼했으며, 이 결혼에서 네 번째 아이인 아들 토마스를 얻었다. 1980년대 초에는 배우 앤 퀸즈버리(전 제12대 퀸즈버리 후작 데이비드 더글라스의 부인)와 세 번째로 결혼했다. 이후 1988년 세라 마일스와 재혼하여 1995년 사망할 때까지 함께했다.[6]

1979년 볼트는 뇌졸중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오른쪽 반신 불수가 되었고, 언어 능력 일부를 상실하는 등 부분적인 마비를 겪었다.[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활에 힘쓰며 왼손으로 전동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하여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20]

전쟁 후, 볼트는 영국 공산당에 가입했지만,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이후 1960년대 말에 탈당했다.[7]

1995년 햄프셔에서 사망했다.[20]

2. 7. 사망

볼트는 1979년에 심장마비와 뇌졸중으로 오른쪽 반신이 마비되는 등 건강 문제를 겪었다. 이후 재활에 힘쓰면서 왼손으로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하여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20] 1995년, 오랜 투병 끝에 잉글랜드 햄프셔 피터스필드에서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8][20]

3. 작품 세계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라디오 드라마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1957년 희곡 《꽃피는 체리》가 성공을 거두면서 교직을 그만두고 극작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토머스 모어의 삶을 다룬 《4계절의 사나이》(1960)가 있으며, 이외에도 《호랑이와 말》(1960), 《신사 잭》(1963), 《볼리그루 남작의 방해》(1965), 《오누이》(1967) 등 다수의 희곡을 발표했다.

《꽃피는 체리》는 평범한 회사원의 좌절과 전원생활에 대한 허황된 꿈을 그린 작품으로, 영국판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4계절의 사나이》는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은 기법을 사용하여 역사적 인물인 토머스 모어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며 큰 감동을 주었다는 평을 받는다.

이후 볼트는 영화계로 활동 영역을 넓혀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닥터 지바고》(1965), 《라이언의 딸》(1970) 등 유명 영화의 각본을 집필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은 주로 사회와 갈등하는 개인의 모습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는 그의 여러 희곡과 영화 각본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제 의식이다. 자세한 작품 분석과 특징은 하위 문단에서 다룬다.

3. 1. 주제 의식

로버트 볼트의 작품, 특히 초기작들은 전위적인 연극이 유행하던 1950년대 후반에 오히려 전통적이고 사실적인 기법을 사용하여 성공을 거둔 점이 특징적이다.[24] 그의 연극은 등장인물 사이의 갈등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명확하게 보여주며[20], 자연주의적인 경향을 띤다[20]。볼트는 관객에게 특정 해석을 강요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해를 이끌어내는 데 능숙했으며, 이러한 방식 덕분에 그의 작품은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20]

뇌졸중을 앓기 전, 볼트는 뛰어난 웅변가였는데, 이러한 면모는 그의 작품에도 반영되어 있다[20]。그가 그려내는 역사적 장면들은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하며, 등장인물의 대사는 평범한 듯하면서도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20]

3. 2. 극작 스타일

볼트의 작품, 특히 초기 작품들은 전위적인 연극이 유행하던 1950년대 후반에 오히려 전통적이고 사실적인 수법을 사용하여 성공을 거둔 것이 특징이다.[24] 그의 연극은 인물 간의 갈등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기승전결을 명확하게 묘사하며[20], 자연주의적인 경향을 보인다.[20] 관객에게 특정 해석을 강요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해를 유도하는 기술에 능숙하여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20]

그의 초기 성공작 《꽃피는 체리》(1957)는 회사원의 좌절과 전원생활에 대한 거짓된 환상을 주제로 다루어, 영국판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작품은 환상과 현실의 뒤섞임이나 주인공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력 같은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하지 않아 상업극 관객의 취향에 잘 부합했다. 대표작인 《4계절의 사나이》(1960)는 토머스 모어를 주인공으로 하여, 브레히트적인 기법을 활용해 역사적 인물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 감동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사실주의표현주의 사이의 실험적인 시도를 했던 《호랑이와 말》(1960)과 《신사 잭》(1963)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아동극인 《볼리그루 남작의 방해》(1965)에서는 그의 재능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볼트는 뇌졸중을 앓기 전까지 뛰어난 웅변가였으며, 이러한 면모는 그의 작품에도 반영되어 있다.[20] 그가 묘사하는 역사적 장면은 현장감이 넘치고, 등장인물의 대사는 평이하면서도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0]

이후 볼트는 활동 영역을 넓혀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라이안의 처녀》 등 유명 영화의 각본을 집필하기도 했다.

3. 3. 영화 각본

볼트는 희곡 작가로서 성공을 거둔 후 영화 각본 작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작품은 주로 주인공이 지배적인 사회와 갈등하는 드라마를 다루었으며, 이러한 주제 의식은 그의 대표작들에서 잘 드러난다.

데이비드 린 감독과의 협업은 볼트에게 큰 성공과 명성을 안겨주었다. 첫 협업 작품인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는 T. E. 로렌스의 자전적 기록인 《지혜의 일곱 기둥》을 각색한 것으로, 여러 작가가 실패했던 작업을 볼트가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그는 로렌스를 영국 사회와 아랍 사회 모두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내며 작가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담아냈다. 이 각본 작업 중 볼트는 100인 위원회의 일원으로 핵 확산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1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4] 제작자 샘 스피겔의 설득으로 2주 만에 석방되었으나, 볼트는 이 일을 후회하며 이후 스피겔과 관계를 끊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각본은 마이클 윌슨과 공동으로 작업했는데, 윌슨이 초고의 구조와 장면을 제공하고 볼트가 대사와 인물 해석을 맡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개봉 당시에는 윌슨의 기여가 인정받지 못하고 볼트만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으며, 윌슨은 1995년에야 공동 각본가로 크레딧을 받게 되었다.

린 감독과의 두 번째 협업인 《닥터 지바고》(1965)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볼트는 원작에 특유의 인간적이고 간결하며 의미심장한 대사와 서사를 불어넣어 호평을 받았고,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했다.

자신의 대표 희곡을 직접 각색한 《사계절의 사나이》(1966) 역시 높은 평가를 받으며[23] 볼트에게 두 번째 아카데미 각색상을 안겨주었다. 이 작품은 토머스 모어헨리 8세의 갈등을 통해 개인의 신념과 양심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었다.

이후 《라이언의 딸》(1970)의 각본을 썼으며, 이 작품으로 40만달러와 수익의 10%를 받아 한때 할리우드에서 가장 높은 수입을 올리는 각본가가 되기도 했다. 1972년에는 《레이디 캐롤라인 램》으로 직접 감독에 도전했으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1979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언어 능력 일부를 상실하고 부분 마비를 겪었으나, 재활 후 각본 작업을 재개했다. 뇌졸중 이후 첫 프로젝트인 《바운티》(1984)에서는 플레처 크리스찬을 사회와 갈등하며 정체성을 잃어가는 인물로 그려내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주제 의식을 이어갔다. 그의 마지막 영화 프로젝트는 18세기 예수회남아메리카 선교 활동을 다룬 《미션》(1986)이었다.

볼트가 마지막으로 완성한 각본은 TV 영화 《경고 없이: 제임스 브래디 이야기》(1991)이다. 이 작품은 로널드 레이건 암살 시도 당시 총상을 입고 회복 과정을 거친 백악관 대변인 제임스 브래디의 실화를 다루었다. 볼트는 브래디의 고통에 공감하며 자신의 뇌졸중 회복 경험을 각본에 반영했다.

볼트의 각본은 일부 비평가들로부터 정치적 맥락보다 주인공의 개인적인 측면에 지나치게 집중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비평가와 관객들에게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아카데미상 2회, BAFTA상 2회를 포함하여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연도제목비고
1962아라비아의 로렌스마이클 윌슨과 공동 각본
1965닥터 지바고아카데미 각색상 수상
1966사계절의 사나이아카데미 각색상 수상, 자신의 희곡 각색
1969레드 텐트추가 대사 (크레딧 없음)
1970라이언의 딸
1972레이디 캐롤라인 램감독 겸임
1984바운티
1986미션
1988사계절의 사나이TV 영화[26]
1989드라이 화이트 시즌각본 수정 (크레딧 없음)
1991경고 없이: 제임스 브래디 이야기TV 영화



이 외에도 볼트는 고어 비달의 소설 《버》의 TV 미니시리즈 각색, 매들린 렝글의 소설 《시간의 주름》 영화 각색, 패티 허스트 납치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각본, 마이클 콜린스에 관한 각본, 갈릴레오 갈릴레이, 스콧아문센에 관한 각본, 앙드레 말로의 소설 《인간의 조건》 각색, 붓다의 삶에 관한 각본 등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또한 《간디》와 데이비드 린이 제작하려 했던 조지프 콘래드의 《노스트로모》 각색에도 잠시 참여했으나 도중에 하차했다.

4. 주요 작품

로버트 볼트는 희곡과 영화 각본 양쪽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그의 주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희곡


  • ''The Critic and the Heart'' (1957)
  • 《꽃 피는 체리》 (''Flowering Cherry'', 1957): 사회에서 낙오한 중년 보험 세일즈맨의 꿈과 좌절을 그린 출세작이다.
  • ''The Tiger and the Horse'' (1960)
  • 《사계절의 사나이》 (''A Man for All Seasons'', 1960): 토머스 모어 경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볼트의 가장 유명한 희곡 중 하나이다. 브레히트적 연극 기법이 특징이다.
  • ''Gentle Jack'' (1963)
  • 《볼리그루 남작의 계략》 (''The Thwarting of Baron Bolligrew'', 1965): 어린이를 위해 쓰인 희곡이다.
  • 《여왕 만세》 (''Vivat! Vivat Regina!'', 1970): 엘리자베스 1세와 메리 스튜어트의 갈등을 그린 역사극이다.
  • 혁명의 시대》 (''State of Revolution'', 1977): 블라디미르 레닌러시아 혁명 이후 레프 트로츠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볼트의 야심작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영화 각본

4. 1. 희곡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라디오 드라마희곡을 쓰기 시작했다.[10] 1950년대에 BBC 라디오를 위해 여러 편의 희곡을 썼으며, 이 중 다수는 어린이를 위한 것이었다. 상연되지 않은 희곡도 여럿 있으며, 무대용으로 각색된 것은 거의 없다. 초기 라디오 희곡 중 하나인 ''The Last of the Wine''(1955)는 핵무기 종말이라는 당시 볼트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정치적 문제를 다루었으나, 출판되거나 널리 공연되지는 못했다.[10]

무대 희곡으로는 1957년 발표한 《꽃피는 체리》(Flowering Cherryeng)가 성공을 거두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극작에 전념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회사원의 좌절과 전원생활에 대한 거짓된 환상을 다루어 영국판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환상과 현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거나 사회적 압력을 강하게 제기하지 않아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랄프 리처드슨, 셀리아 존슨 등이 출연한 웨스트 엔드 공연은 성공했으나, 아서 밀러의 작품과 유사하다는 비판도 있었고 브로드웨이 공연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꽃 피는 체리』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사계절의 사나이》(A Man for All Seasonseng, 1960)는 토머스 모어 경이 헨리 8세의 종교개혁에 맞서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1954년 라디오 희곡으로 먼저 선보였던 것을 각색한 것으로, 부패한 사회와 권위에 맞서는 개인이라는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룬다.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아 '평범한 사람'이라는 해설자적 인물을 등장시켜 역사적 인물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폴 스코필드가 주연을 맡은 초연은 영국과 미국 양쪽에서 큰 비평적,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여러 차례 재공연되었고 1966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호평받았다. 한국어 제목은 『모든 계절의 사나이』이다.

《호랑이와 말》(The Tiger and the Horseeng, 1960)과 《신사 잭》(Gentle Jackeng, 1963)에서는 사실주의표현주의를 결합하려는 실험적인 시도를 했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호랑이와 말》은 개인주의, 사회, 권위, 정치라는 주제를 다루며 대학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반면, 아동극인 《볼리그루 남작의 방해》(The Thwarting of Baron Bolligreweng, 1965)에서는 재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어 제목은 『볼리그루 남작의 계략』이다.

1971년 발표된 《비바! 비바 레지나!(Vivat! Vivat Regina!)》는 메리 스튜어트와 엘리자베스 1세의 대립을 그린 역사극으로, 두 여왕의 성격과 통치를 비교하며 흥미롭게 전개된다. 《사계절의 사나이》 이후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브로드웨이에서도 장기 공연되었고 여러 토니상 후보에 올랐다. 한국어 제목은 『여왕 만세』이다.

혁명의 시대(State of Revolution)》(1977)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을 다룬 정치극이다. 블라디미르 레닌을 "끔찍한 생각을 가진 위대한 사람"으로 묘사하며, 그의 사후 권력을 잡기 위한 레온 트로츠키와 이오시프 스탈린의 투쟁을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의 시점에서 그린다. 방대한 조사에 기반했음에도 불구하고 평가는 엇갈렸으며, 볼트 자신도 작품의 완성도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볼트의 가장 야심찬 걸작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 외 희곡으로는 ''The Critic and the Heart''(1957), 《오누이》(1967) 등이 있다. 볼트는 희곡 외에도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라이안의 처녀》 등 성공적인 영화 각본을 쓰기도 했다.

4. 2. 영화 각본

희곡 작가로 명성을 얻은 후, 로버트 볼트는 데이비드 린 감독과의 협업을 통해 영화 각본가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영화 각본은 주로 개인이 거대한 사회 구조나 권력에 맞서는 과정을 그리는 경향이 있었다.

데이비드 린 감독과 협력한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는 T. E. 로렌스의 자전적 소설 지혜의 일곱 기둥을 각색한 작품이다. 볼트는 복잡한 원작을 로렌스라는 인물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재해석하여 설득력 있는 각본을 완성했다.[1] 이 작품에서 로렌스는 영국과 아랍 사회 양쪽에서 소외되는 인물로 그려진다. 마이클 윌슨이 초고 각본 작업에 참여했으나, 개봉 당시에는 볼트만이 각본가로 이름을 올렸고 아카데미상 후보에 지명되었다 (윌슨의 기여는 1995년에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한편, 볼트는 이 영화 작업 중 핵무기 확산에 반대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100인 위원회)에 참여했다가 투옥되었다. 그는 신념에 따라 석방을 위한 서명을 거부했으나, 제작자 샘 스피겔의 설득으로 2주 만에 석방되어 각본 작업을 마무리했다. 볼트는 후에 이 결정을 후회했고 스피겔과 다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4]

이후 닥터 지바고(1965)에서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원작 소설에 특유의 인간적이고 함축적인 대사를 가미하여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했다. 자신의 대표 희곡을 직접 각색한 사계절의 사나이(1966)로 또다시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하며 각본가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23]

뇌졸중을 겪은 후 참여한 바운티(1984)에서는 플레처 크리스찬을 통해 사회와의 갈등이라는 주제를 이어갔다. 그의 마지막 영화 프로젝트인 미션(1986)은 18세기 남아메리카 예수회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다시 한번 그의 핵심 주제 의식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각본을 쓴 작품은 TV 영화 경고 없이: 제임스 브래디 이야기(1991)이다. 이 작품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 당시 총상을 입은 제임스 브래디 백악관 대변인의 회복 과정을 그렸는데, 볼트 자신도 뇌졸중 후 회복 과정에서의 경험을 투영하여 각본을 완성했다.

볼트는 레이디 캐롤라인 램(1972)으로 직접 영화감독 데뷔를 하기도 했으나, 이 작품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의 각본이 (특히 아라비아의 로렌스사계절의 사나이에서) 거시적인 정치적 맥락보다 인물의 내면에 지나치게 집중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그의 각본은 비평가와 관객 모두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볼트는 영화 및 텔레비전 각본 작업으로 두 개의 오스카상과 두 개의 BAFTA상을 수상했으며, 여러 다른 상에도 후보로 올랐다.
라이언의 딸(1970) 각본료로 40만달러와 흥행 수익의 10%를 받으면서 한때 할리우드에서 가장 높은 수입을 올리는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주요 영화 각본 목록
연도제목비고
1962아라비아의 로렌스마이클 윌슨과 공동 각본 (초기 크레딧 누락), 아카데미 각색상 후보
1965닥터 지바고아카데미 각색상 수상
1966사계절의 사나이자신의 희곡 각색, 아카데미 각색상 수상
1969레드 텐트추가 대사 작업 (크레딧 없음)
1970라이언의 딸
1972레이디 캐롤라인 램각본 및 감독
1984바운티
1986미션원작 소설 출판 후 각색
1988사계절의 사나이TV 영화[26]
1989드라이 화이트 시즌각본 수정 (크레딧 없음)
1991경고 없이: 제임스 브래디 이야기TV 영화



이 외에도 고어 비달의 소설 의 TV 미니시리즈 각색, 매들린 렝글의 시간의 주름 영화 각색, 패티 허스트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The Cover-Up (올리버 스톤과 공동 작업), 마이클 콜린스에 관한 Blest Souls (마이클 치미노와 공동 작업),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탐험가 스콧아문센에 관한 각본, 치미노와 함께 작업한 앙드레 말로의 소설 인간의 조건 각색, 론 프릭을 위한 싯다르타의 삶에 관한 Buddha 등 여러 편의 미완성 또는 미제작 프로젝트가 있었다. 또한 볼트는 간디데이비드 린이 제작하지 못한 조지프 콘래드노스트로모 영화 버전의 작가로 잠시 참여했지만, 두 작품 모두에서 교체되었다.

5. 수상 경력



'''토니상'''

연도후보작부문결과[16]
1962사계절의 사나이최우수 연극상수상
1972비바! 비바 레지나!후보

참조

[1] 서적 A Man For All Seasons Macmillan Master Guides
[2] 서적 A Man For All Seasons Macmillan Master Guides
[3] 서적 Robert Bolt: Scenes from Two Lives Hutchinson
[4] 뉴스 Obituary: Robert Bolt https://www.independ[...] 1995-02-23
[5] 서적 Robert Bolt : scenes from two lives https://www.worldcat[...] Hutchinson 1998
[6] 서적 Robert Bolt: Scenes From Two Lives Hutchinson
[7] 뉴스 Twelve years ago Robert Bolt, right,... https://www.latimes.[...] 1991-06-09
[8] 웹사이트 OBITUARY : Robert Bolt https://www.independ[...] 2021-01-12
[9] 웹사이트 Robert Bolt - Trivia https://www.imdb.com[...] 2024-12-01
[10] 간행물 Critic on the Hearth Listener 1954-08-05
[11] 웹사이트 Listening for Madeleine (Excerpt) http://www.tor.com/2[...] TOR 2012-11-29
[12] 웹사이트 Seizure, Midnight Express and Platoon: An Excerpt from The Oliver Stone Experience https://filmmakermag[...] 2016-08-30
[13] 웹사이트 Michael Cimino rêve d'adapter " La Condition Humaine " d'André Malraux http://fr.blouinarti[...] 2013-03-12
[14] 간행물 FUTURE FILMS https://variety.com/[...] 1995-05-15
[15] 웹사이트 Fricke's Buddha movie to shoot in Cambodia, Thailand, India https://www.screenda[...] 2005-04-27
[16] 웹사이트 Search Results: Robert Bolt http://www.tonyaward[...]
[17] 웹사이트 Robert Bolt http://awardsdatabas[...]
[18] 웹사이트 BAFTA Awards Search: Robert Bolt http://awards.bafta.[...]
[19] 웹사이트 Robert Bolt http://www.goldenglo[...]
[20] 웹사이트 OBITUARY : Robert Bolt http://www.independe[...] The Independent 2011-03-31
[21] Imdb
[22] 웹사이트 OBITUARY: Robert Bolt http://www.independe[...] The Independent 2011-03-31
[23] 서적 英語文学事典 ミネルヴァ書房
[24] 서적 20世紀 イギリス文学作家総覧 北星堂書店
[25] 서적 イギリス文学辞典 研究社
[26] Screenonline
[27] 저널 Supplement to The London Gazette: 1972 Birthday Honours https://www.thegazet[...] 201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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